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와사키 축제 (문단 편집) == 다른 투표에서는 == 2003년 시즌의 [[https://npb.jp/allstar/2003/ballotresult.html|올스타전 투표는]] 카와사키 축제가 기세를 탄 영향인지 2ch의에서 올스타전 투표 관련 스레가 성행하기도 했는데 아래의 선수들은 2003년 川崎憲次郎をオールスターファン投票1位にしよう。라는 스레드에서 언급되거나 의견이 모여서 아예 파생 스레드가 따로 세워진 선수들이다. '''투표 포지션 - (소속팀)/(선수명칭): 선수 설명과 투표 대상이 된 이유''' * 센트럴 리그 포수 - 히로시마/스즈에 유우키(鈴衛佑規): 1996년 히로시마 입단 후 카와사키 축제가 일어난 시기인 2003년까지 1군 출장이 단 2번밖에 없던 2군 포수였음에도 전력외 통보 즉 방출을 당하지않은 특이한 커리어를 지녔는데 그나마 상위라운드 출신이라면 예전 포텐셜을 보고 부여잡겠지라는 생각이라도 가능했지만 이 선수는 하위라운드인 6라운드 지명출신이다.[* 카프는 스즈에의 방출 후 또 이런 식으로 1군에 거의 올라가지도 못하는 2군전드 포수를 한 명 배출해냈는데 바로 19년 통산 90경기에 나온 시라하마 유타다. 단 이 선수는 1라운더이긴 했다.] 당연히 저러한 이유로 일본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히로시마 도요 카프 유우 연습장|유우 연습장]]의 요정이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로 컬트적인 인기를 끌던 선수였고 투표 대상이 된 이유도 이것이었다. 총 투표 결과는 23,506표로 센트럴 리그 포수 10등 여담이지만 사건 이후인 2005년에 2군에서 3할 후반대의 고타율을 기록하면서 다시 1군에서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타석에 그대로 서보지 못했고 2006년에 은퇴하면서 결국 1군 커리어는 2경기로 마무리되었다. 이후 불펜 포수로 전향했다. 여담으로 이놈의 생존왕 기믹 덕분에 ‘스즈에 잔류!’ 라는 밈도 생겼다. * 센트럴 리그 포수 - 한신/노무라 카츠노리(カツノリ/野村克則): 前 한신의 감독이자 일본 야구를 대표하는 명장이었던 [[노무라 카츠야]]의 장남으로 아버지가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있던 시절인 1996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3라운드로 입단했다. 등록명은 カツノリ. 다만 들어간 팀도 그렇고 이후 아버지의 팀을 따라간 커리어나 [[https://npb.jp/bis/players/91393882.html|보여주는 성적이 워낙 저조하다 보니]] 아버지 빽으로 프로판에 들어왔다고 욕을 엄청나게 먹었는데 당연히 투표 대상이 된 이유도 이것이었다. 총 투표 결과는 152,980표로 센트럴 리그 포수 7등. * 센트럴 리그 1루수 - 한신/트레이 무어(トレイ・ムーア): 2003년 당시 한신의 2년차 [[외국인 선수]]였다. 여기까지는 무난해 보이겠지만 사실 이 선수는 위의 각주에서 언급되었겠지만 투수다. 대상이 되었던 이유는 타격능력이 투수치곤 좋아서였는데 실제로 지명타자를 쓰지 않는 센트럴리그 특성상 타석에 자주 나오는 편이었고 2002시즌에는 .274/.286/.339의 슬래시 라인을 2003시즌에는 ,326/.326/.395의 슬래시 라인을 기록했다. 총 투표 결과는 437,116표로 센트럴 리그 1루수 3등...[* 참고로 당시 히로시마에서 주전으로 뛰고 있던 [[아라이 타카히로]]가 4등으로 밀렸다.] 다만 투수로서의 퍼포먼스가 외국인 투수치곤 묘해서 2003년 이후 재계약에 실패했다. 오릭스가 주워갔지만 6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면서 그대로 방출되었다. * 센트럴 리그 2루수 - 야쿠르트/츠기오 사토(ツギオ/佐藤二朗): [[일본계 브라질인]]으로 본명은 ツギオ・レイナルド・サトウ(Tsugio Reinaldo Sato). 1999년에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입단한 선수로 일본에서 학교를 다닌 것도 아니고 브라질 국적이었기 때문에 용병슬롯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당시 야쿠르트는 [[로베르토 페타지니]], [[알렉스 라미레스]]라는 걸출한 외국인 타자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타자인 이 선수가 용병 자리를 먹을수는 없었고--물론 페타지니는 2003년에 요미우리로 이적하지만-- 일본인으로 귀화를 시도했다. 대상이 된 이유도 당연히 일본인 귀화였다. 총 투표 결과는 85,154표로 센트럴 리그 2루수 8위. 여담으로 일본인 귀화를 선언한 2003년 시즌 후 전력외 통보를 받고 방출당하고 말았다. 이후 사회인 야구 기업팀인 시닥스와 야마다에서 활동하다가 2019년부터 플레잉 코치를 하였고 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선수를 은퇴하고 전임 코치를 하다가 2023년에 완전히 실업야구판까지 떠났다. 사회인야구에서는 꽤 잘 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해피엔딩. * 센트럴 리그 3루수 - 한신/카타오카 아츠시(片岡篤史): 첫 스레드가 세워졌을 때 3루수로 뽑자고 언급된 한신의 내야수. 별다른 이유를 찾기 힘들 정도로 준수한 성적에 외적인 이유도 없다. 물론 이때 올스타 투표 기본 틀에 올라간 한신의 3루수는 용병인 조지 아리아스였다. 어쨌든 이유를 찾기 힘들어서였는지 스레드 내에선 밀어주는 느낌도 아니었고 자주 언급되진 않았다. 정작 아이러니하게도 올스타 투표가 한창이던 6월 주전 우익수였던 하마나카 오사무가 어깨부상으로 시즌아웃이 되면서 올스타 투표에 1루수로 올라가 있던 [[히야마 신지로]]가 우익수로 갔고 3루수로 올라가 있던 조지 아리아스가 1루수로 가면서 주전 3루수에 등극했다. 그 영향인지 나름 올스타 표를 받았다. 총 투표 결과는 센트럴리그 3루수 5등인 364,169표. * 센트럴 리그 3루수 - 요코하마/[[후루키 카츠아키]]: 선수 항목에도 나와 있지만 2003시즌 퍼포먼스의 영향으로 대상이 되었다. 총 투표 결과는 센트럴리그 3루수 4등인 483,511표. * 센트럴 리그 유격수 - 요코하마/[[이시이 타쿠로]]: 항목에도 나와 있는 선수 외적인 이슈가 워낙 강한 것 때문에 대상이 되었다. 총 투표 결과는 센트럴리그 유격수 6등인 244,239표. * 센트럴 리그 외야수 - 요미우리/크리스 라셈(Chris Latham): 당시 요미우리가 [[마쓰이 히데키]] 이적으로 안면이 트인 [[뉴욕 양키스]]를 통해 데려온 외인 외야수. 여기까진 무난한데 2003년 5월 21일 경기 중 1사 1, 2루 상황에서 외야플라이를 잡았는데 그만 쓰리아웃 공수교대로 착각하고 평소 팬서비스가 좋았던 [[https://www.youtube.com/watch?v=lsbRBxci5JY|그가 외야 관중석에다 공을 던져 볼데드상황을 만드는 바람에 2루에 있던 주자가 홈인을 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당연히 그 사건을 놓치지 않은 2ch 유저들의 대상이 되었다. 총 투표 결과는 센트럴 리그 외야수 21등인 115,951표. * 퍼시픽 리그 마무리투수 - 오릭스/맥 스즈키(マック鈴木): 일본인 메이저리거 출신 선수. 본명은 스즈키 마코토(鈴木 誠)로 미국 진출 당시 마코토라는 발음을 미국인들이 하기 힘들다고 맥으로 불러서 맥 스즈키로 등록했다. 고등학교 시절 외부에서 일으킨 폭력사건으로 퇴학당한 후 또 폭력사건으로 인해 가정법원까지 간 영향인지 아버지와 지인의 소개로 도망치듯이 미국으로 유학을 간 뒤 커리어를 시작하고 일본으로 돌아온 케이스다. 이로 인해 돌아올 때 드래프트를 받고 팀에 입단했는데 오릭스가 2라운드 픽까지 써 가면서 데려왔다.[* 사실 이때 후일담이 있었는데 원래 맥 스즈키를 좋게 평가하던 팀은 [[야쿠르트 스왈로즈]]였다. 사실상 입단을 기정사실화하고 일본 리턴을 했는데 상기된 이유로 드래프트를 거칠 수밖에 없었고 그 드래프트 과정에서 오릭스 블루웨이브스가 얼리픽으로 먼저 데려갔다. 맥 스즈키를 놓친 야쿠르트는 울며 겨자먹기로 차순위 선수를 지명했는데 그 선수가 바로 [[다테야마 쇼헤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좋은 기량을 보여준 투수는 아니였고 입단한 오릭스에서도 애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대상이 되었지만 메이저리그라는 이름값의 영향인지 총 투표 결과는 퍼시픽 리그 마무리 투수 2등인 499,164표. * 퍼시픽 리그 지명타자 - 세이부/[[마쓰자카 다이스케]]: 동명이인이 아니라 그 투수 마쓰자카가 맞다. 마쓰자카 다이스케 항목에도 서술되었지만 실제로 투수치곤 타격 평이 괜찮았던 터라 무어랑 같은 이유로 대상이 되었다. 총 투표 결과는 퍼시픽 리그 지명타자 7등인 148,583표. * 퍼시픽 리그 포수 - 치바 롯데/후쿠자와 요이치(福澤洋一): 노쇠화로 인해 마지막 시즌이 유력했던 치바롯데의 원클럽맨. 하지만 14년 프로통산 안타를 124개를 기록할 만큼 경기에 자주 나서지 못했던 백업포수였다. 당시 올스타전 2차전 경기가 치바 롯데의 홈구장인 [[ZOZO 마린 스타디움]]에서 열렸기 때문에 원클럽맨인 그를 기리기 위해 2ch의 치바 롯데 팬들이 밀었다. 총 투표 결과는 퍼시픽 리그 포수 7등인 94,173표. * 퍼시픽 리그 3루수 - 킨테츠/[[나카무라 노리히로]]: 다른 포지션 투표와 다르게 이쪽은 이 선수를 떨구기 위해 2ch에서 의견이 모아진 케이스로 심지어 짧게 스레까지 따로 세워졌다. 이유에 대한 전후 과정 설명은 [[나카무라 노리히로]] 항목 참조. 어쨌든 안티 나카무라 노리히로 연합이 밀던 선수는 당시 닛폰햄에서 뛰던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결과는 1,158,012표를 얻은 오가사와라가 988,656표를 얻은 나카무라를 이기면서 안티 나카무라의 승리가 되었다. * 퍼시픽 리그 유격수 - 치바 롯데/릭 쇼트(リック・ショート): 치바 롯데의 1년차 외국인 선수 이 선수는 트레이 무어와 다르게 야수다. 그나마 여기까지만 본다면 일반적인 투표처럼 보이겠지만 하지만 이 선수의 주 포지션이 외야수와 3루수였다. 유격수로 뛴적이라곤 싱글 A 시절 이후에는 전무했는데 그냥 이름이 [[유격수|ショート]]라서 타겟이 되었다. 총 투표 결과는 퍼시픽 리그 유격수 7등인 115,007표. 여담이지만 이름 때문에 대상이 된거지 타격 성적 자체는 준수한 편이었고 나름 외야 전포지션을 맡는 유틸리티성으로 인해 일본프로야구에서 몇 년간 활약했다. 미국으로 돌아간 2004-2005년을 제외한 2003, 2006, 2007, 2008 4시즌 연속 3할을 기록했고 2008년 라쿠텐 시절에는 타율 1등까지 기록할 정도였다. [[분류:인터넷 투표]][[분류:헤이세이 시대/인터넷 사건 사고]][[분류:5ch/사건 사고]][[분류:2003년/사건사고]][[분류:야구 기담]]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